임전보국단은 태평양전쟁(대동아전쟁)을 옹호하고 조선인의 전쟁 참여를 독려하던 대표적 친일 단체다
김용주는 1943년 경북도회 의원 자격으로 참석한 전선공직자대회에서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 전쟁에 동원되는 조선 청년들의 부모를 향해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하고, “귀여운 자식이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질 영광”이라는 표현까지 하는 등 강도 높은 친일 발언을 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짓밟은 일본의 앞잡이 매국노들을 처벌하고 역사를 바로세우기 해야한다는 여론이 조성되었고
국회에서 친일파 청산을 위한 단체 반민특위가 결성 되었다
그런데 친일 청산 반대한 이승만은, 처음에 백민태를 시켜 반민특위 위원을 몰래 암살하려 시도했지만 백민태가 양심 상 거부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만다 결국 이승만은 나중에 친일 경찰을 시켜서 반민특위를 종북단체로 몰아서 습격, 와해 시켜 버렸다 이렇게 친일 이승만 때문에 대한민국 역사바로세우기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is.gd/7IfLMX
뿐만아니라 이승만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조봉암, 최능진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종북간첩으로 몰아서 처형하기도 한 살인 독재자였다is.gd/Zl48Lm
박근혜 김무성 등이 친일 이승만을 건국의 상징으로 숭상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국민은
과거 출세를 위해 친일과 독재 앞잡이 짓을 해서 재산을 축적했다던지 전임 시장들 처럼 국민 아파트는 외면하고 부자 대형 아파트만 지었다던지 전시행정하면서 여기저기 마구 예산을 낭비하면서 서울시를 25조 빚더미에 앉게 했다던지 하는 정말 제대로 된 잘못을 찾아서 올바른 비판을 해야 되지 않을까
게다가 보수 세력의 비방이 도를 넘어 없는 사실을 날조 하는 짓도 서슴지 않고 있다
박원순이 과거에 활동했던 사회봉사 단체 아름다운재단에 부정, 횡령이 있다는 모함도 끈질기게 있었지만 결국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is.gd/Gdxtch
그리고 동성애자 축제에 국민 혈세 2억을 지원했다는 등의 유언비어도 있었지만 역시 정치 세력의 모함으로 밝혀졌다is.gd/PLBvhm
동성결혼 허용설 역시 김조광수가 구청에 동성 혼인신고를 시도했지만 거부당했듯이 사실이 아니다
물론 얼마 전 동성애 퀴어축제를 허용한 건 사실이다. 동성애는 나도 반대한다 동성애자 축제 같은 건 강제로 금했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서울시민이 광장에서 행사를 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이 불법 행사가 아닌 이상 무슨 독재 정권도 아니고 서울시장으로서 강제로 못하게 막을 수도 없는 시장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얼마 전엔 박원순의 28억 전세가 호화 사치라면서 TV조선, 뉴데일리 등 친 기득권 언론과 보수의 비방 욕설이 넘쳤다
하지만 28억 전세 공관은 외빈 초청 업무용으로서 다른 장관과 시장의 공관에 비할 때 평수도 훨씬 작았고 오히려 검소한 편이었다
정부는 물기둥이 없었다고 발표했다가 다시 물기둥에서 물방울 튀었다고 번복하기도 하였고is.gd/UjWZHv 처음 탄약고에 손상이 없다고 발표 했으나 충격파로 두 동강 났는데 손상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는 지적이 잇따르자 "하역해서 가지런히 정리했다"고 말을 바꾸기도 했다is.gd/b3vcln
이명박 정부의 말 바꾸기 거짓말들 때문에 당연히 의문을 품게 된 것을 가지고 무슨 북한 추종으로 갖다 붙이는 건 지나친 정치 공세다
새누리당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부터 평화의댐 사기사건is.gd/B4a0z8 한나라당 때 총풍사건 등 안보를 정치에 이용해온 수많은 전력이 있다 보니까 북풍사건만 터지면 이거 또 안보 공작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나오게 된 것이라 봐야한다
그외 종북 발언이라고 비난하는 것들을 찾아보면 평화통일과 인권, 자유 등에 대한 발언을 앞뒤 자르고 갖고 와서 원래의 의미를 왜곡 시킨 것들이 많다
다만 김일성 만세 하면 어떻게 하냐는 질문과 답변은 과거 사회봉사하던 시절, 보안법과 인권 관련 인터뷰 중에 잠깐 나온 건데
"조선일보 주장처럼 광화문 네거리에 '김일성 만세'라고 부르면 어떻게 하느냐는 우려는
헌법에 나와 있는 표현의 자유를 스스로 포기하고 이를 억압하겠다는 뜻" 이라고 답한 것이다.
근데 이 답변 만큼은 잘못되었다고 본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더라도 전두환 독재자 만세가 안 되듯이 김일성 독재자 만세 같은 발언은 곤란하다
지금 일베가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해서5.18광주민주화운동을 종북 폭동이라고 역사 왜곡 하면서 전두환 살인독재 찬양을 일삼고 있지 않은가love25.tistory.com/33
이처럼 표현의 자유일지라도 윤리와 도덕에 바탕을 둔 사실에 근거한 올바른 표현이라야지 김일성 만세도 표현의 자유라고 말한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
물론 박원순의 의도는 김일성 찬양하고자 한 게 아니라 과거 군사독재 시절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던 가혹한 탄압을 체험한 민주운동가 출신으로서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강조하려 하다 보니 다소 과하게 흘러나온 발언이라고 볼 수 있다
근데 이러한 사소한 말 실수를 꼬투리 삼아 마치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종북간첩으로 몰아부치는 세력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박 시장은 말을 조심했어야 한다
민주주의와 통일을 꿈꾸는 열사 중에도 말을 함부로 해서 종북의 빌미를 주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화 나는 일이다
하지만 말 한마디 가지고 종북으로 모는 식이라면 박근혜도 종북인가?
2002년 박근혜 의원이 김정일과 비밀회담하고 와서 김정일은 솔직하고 신뢰가 가는 인물이라고 호평한 적이 있었는데 그럼 박근혜는 북한 찬양하는 종북간첩인가?is.gd/by7nuL
박근혜가 김정일과 만난 사진, 발언 등을 꼬투리 삼아 일베가 하듯이 합성사진 올리고 종북간첩이라고 욕설로 네이버에 온통 도배를 한다면 아마도 박근혜 역시 박원순 처럼 종북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처럼 종북몰이는 갖다 붙이기 나름이다
이승만 12년과 군사정권 30년 동안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 학생시민을 종북간첩으로 몰아서 고문하고 처형한 사례가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새누리당은 과거 42년 독재정권의 종북 매카시즘을 아직도 답습하고 있다 지금도 입만 열면 종북몰이를 하고 있다
지난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이 드러나 궁지에 몰리자 국민의 관심을 돌리려고 노무현이 김정일에게 NLL을 포기했다 주한미군철수를 약속했다 등 있지도 않은 노무현 종북몰이를 하였습니다 정문헌, 김무성 등이 선동을 하였는데 나중에 국방부 검찰 공식 발표로 모두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is.gd/td6gX6
허위유포하면서 사회를 혼란 시킨 정문헌 의원은 겨우 벌금형 밖에 받지았다 새누리 정부 검찰의 봐주기 논란은 최근 김무성 마약 사위 솜방망이 처벌에서도 보듯이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문헌의 이러한 허위 선동을 아직도 사실로 믿고 있는 국민이 많은게 현실이다
2014년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도 진실이 밝혀졌고 2015.3.5 김기종 리퍼트 미국대사 피습사건 역시 배후에 종북세력이 있는 것처럼 선동을 하였다 하지만 역시 보안법 혐의 없다고 밝혀졌다is.gd/jUZX1n
케네디 정부는 박정희가 쿠테타로 정권을 잡고 저지르는 엽기적인 인권말살, 국민 탄압에 스네이크 박이라는 별칭을 붙이며 뱀같은 자라고 경계했다" 프레이저보고서
"박정희,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 워싱턴 포스트
"박정희정권은 제거되어야 할 악마의 정권" 지미 카터
"내게 선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분명히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내게 악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분명히 말할 수가 있다. 박정희가 권력유지를 위해 죄 없는 사람들에게 행한 그 짓이 분명히 악이었다" 제임스 시노트 신부
"박정희는 위험한 인물이다. 그는 변덕스럽고 잘 흥분하며 술을 많이 마신다. 부인에게 재떨이를 던지기고 했고, 보좌진에게도 몇 차례 던진 일이 있다"
"박 대통령은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서 모든 명령을 내린다. 박 대통령의 장군들은 그 명령에 따른 모든 조치를 이튿날 아침까지 연기해 놓으며, 다음날 아침 박 대통령이 아무 말이 없으면 간 밤에 말 했던 것을 잊어버린다" (사이러스 밴스 전 미국무장관)
하지만 국내에서 여전히 박정희 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교과서 학자들이 많다
남덕우 전총리는 "외국에서는 故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2012년 대선 며칠 전TV조선에 출연해서 한 발언이다
하지만 한국 대선관련 미국 워싱턴 포스트의 12일자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박근혜 후보의 참모들은 박 후보를 아버지와 연관짓는 데 대해 민감하다. 그들은 기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가리켜 ‘독재자’로 부르지 말아줄 것을 요청하는 공지(memo)를 각 언론사에 보낸 바 있다”
한겨레의 관련 기사가 인용한 한 외신 관계자에 따르면, 한 외신 관계자는 “지난해 말인가 올 초인가 사진 설명에 ‘독재자의 딸’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새누리당 쪽에서) 넣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 새누리당 사람들이 직접 찾아와서 ‘그렇게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하기도 한 것으로 안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남덕우의 주장 처럼, 정말 외국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부르지 않을까?
궁금해서 박정희 park jung hee 를 구글 뉴스에서 검색을 해 보았다.
박정희를 독재자였다고 소개한 외신들은 다음과 같다.
1.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독재자의 딸’이란 제목을 17일치 아시아판 표지에 실었고, 이를 새누리당 측이 7일 The Strongman’s Daughter <타임>의 제목을 ‘강력한 지도자의 딸’로 번역한 보도자료를 배포해 논란을 자초한 바 있다.
하지만 strongman 단어 뜻은 독재자이다
2. 영국 가디언
암살당한 독재자 박정희의 딸, 박근혜
3. 워싱턴포스트
한국에서 박정희가 독재자였다고 광범위하게 인정되지만,
4. AFP 통신
박근혜는 군부의 지지를 받았던 독재자 고 박정희의 딸이고,
5.시드니 모닝 해럴드
박근혜는 전직 남한 독재자 박정희의...
6.로이터 통신
남한의 전 독재자 박정희
7. 월 스트리트 저널
군사 독재자 박정희
8. 아사히 신문
전 독재자 박정희의 딸
9. 자카르타 포스트
전 독재자 박정희
10. 시애틀 타임스
전 독재자 박정희의 딸
11. 프랑스 주간지 쿠리에 엥테르나쇼날
전 독재자 박정희
12. 마지막으로 프랑스 르몽드
Vu de l'étranger, il peut paraître surprenant que la fille d'un dictateur soit candidate à la présidentielle dans une démocratie jeune...
외국의 시각에서 보면, 독재자의 딸이 (한국 같은) 젊은 민주주의 국가의 대선에서 후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놀랍게 보일 수도 있다.
-그외 해외 언론
도이치 벨레
- Park Geun-hye is the daughter of South Korea's late military dictator Park Chung-hee
슈피겔
Beobachter rechnen der populären Parteichefin Park Geun Hye, Tochter des früheren Diktators Park Chung Hee (1961 bis 1979), einen großen Anteil an dem Erfolg zu.
텔레그라프
Park is the daughter of slain South Korean dictator Park Chung-hee, whose legacy still divides this nation of 50 million.
BBC
Now the daughter of the former South Korean military dictator, Park Chung-hee
2009년 개그맨 최양락이 자신이 진행하는 MBC라디오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를 통해 토로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소회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최양락은 "그동안 언론플레이에 놀아났던 것 반성하고 싶다"고 하면서
"재임시 특별교부금 몇 조원을 마다한 분 한테 어떻게 몇 억 뇌물이라는 누명을 씌어보려고 했나?
오히려 기부천사다"고 방송에서 말했다고 한다.
<최양락의 재미있는 라디오>
" 故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특별교부금 총 6조원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셨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습니다. 참고로, 특별교부금이란 대통령 자유재량의 유용비라고 합니다.
무려 6조원의 사회환원 기사가 당시 신문엔 한줄도 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언론이 국민의 편에서서 올바른 진실을 알리기 보다는 보수 권력의 편에 서서 노무현 정권에 대해서 악의적인 보도를 일삼곤 했던 것은
우리나라 언론자유지수가 새누리당 정권 들어서 어떻게 추락했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노무현때 해외 RSF가 평가하는 언론자유지수가 31위로 역대 가장 높았는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면서 한국의 RSF언론 자유지수가 69위로 급락하고
박근혜 들어서는 70위까지 폭락하였다
노무현에 대한 언론 보도는 더욱 편파적이고 비난과 모함으로 가득 차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은 노무현의 대통령특별교부금 (5년 총 6조 전부 사회 환원) 내막은 다음과 같다
" 노무현 대통령은
소위 통치자금이라고 하는 "대통령특별교부금"을 국가사업 필요한 행정기관에 내놓았습니다
이 돈은 오로지 대통령 재량에 달려있는 자금입니다
노 대통령,특별교부금 폐지 검토 지시=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24일 행정자치부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특별교부금을 폐지해 보통교부금에 흡수하는 등 개선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 “특별교부금은 원칙 없이 정치적 선심사업에 사용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특별교부금의 배분기준을 재검토해 자의적으로 사용될 여지가 없도록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노 대통령도 특별교부금이 권력층의 쌈짓돈처럼 사용돼 왔다는 문제점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특별교부금 제도는 폐지되지 않고 규모와 운용방법 등만 조금씩 변해왔다. 2003∼2004년에는 1조원이 넘던 특별교부금 규모가 2005년부터는 7000억원대로 축소됐고 사용용도도 재해대책비와 특정현안비로 단순화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특별교부금이 도로 개설 등 지역개발보다는 사회복지·문화사업에 집중 지원되도록 했고 심사와 사후관리도 강화했다."
결국, 그 돈은 2003년 태풍 매미 피해가 났을때 그 돈으로 복구사업비로 사용했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자신은...단 한푼도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히기 위해서 마음대로 사용 할 수 있는 1조원 넘는 돈을 국민들의 피해보상에 사용하게 지시를 한 그가...지금은 퇴임 후.. 집한채 지을 돈이 없어서 자신의 후원 기업인에게 돈을 빌린 것이 온세상 메스컴에 부패의 화신으로 둔갑하여 기사화 되고 있습니다.
노무현 NLL포기, 주한미군철수 등 온갖 허위유포를 하며 사회를 혼란 시킨 정문헌은 겨우 천만원 벌금형 밖에 받지 않았다. 최근 김무성 사위 마약 봐주기에서도 보듯이 정치 검찰의 새누리 봐주기 논란은 이명박 때 부터 지금까지 계속 되고 있다 NLL, 주한미군 등 일베와 새누리당의 종북 모함과는 달리 노무현은 이명박 보다 더 국방력 강화에 예산 증액한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일베는 새누리당 정권이 대북지원한 건 욕 안 한다 1조4천억 퍼준 미국도 욕 안 한다 김대중노무현만 종북이라고 욕한다is.gd/KrJXNQ
똑같이 퍼주어도 새누리당이 하면 평화통일이고 미국이 퍼주면 국제 평화인데 김대중노무현이 지원하면 종북이라고 거품을 무는 것이다.
그리고 대북지원은 서독이 동독에게 경제 지원했듯이 평화통일 위한 투자 성격도 있는 것인데
이것을 무조건 종북으로 몰아부치는 것은 통일을 가로막는 흑백논리로서 국가 발전에도 이롭지 않다
남북통일이 된다면 전쟁 위험이 사라지면서 한국의 해외 신용도가 올라간다.
천문학적인 국방비를 지출할 필요도 없다. 미군에게 수조원씩 갖다 바치는 종속 관계에서 자주국방의 강국으로 격상 된다
통일이 되면 북한의 천문학적인 지하자원은 우리 것이 되는 것이다.
통일 독일이 유럽의 초강국이 되었 듯이 통일 대한민국 역시 강력한 나라로 부상할 수 있다.그래서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들은 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기득권을 지키기에만 급급한 상위 1%는, 통일에 별 관심이 없다
해방 후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를 고집하면서 대통령 자리만 탐하기 바빴다독립운동가 김구는 마지막 순간까지 남북 통일 정부를 주장하였다 국민의 지지를 받던 애국자 김구는 암살 당하고 권력의 화신 이승만이 권좌를 차지하게 되면서 친일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가 국회에서 결성 되자 이승만은 백민태를 시켜 반민특위 위원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하고 만다. 그러자 다시 친일 경찰을 시켜서 반민특위를 습격해서 와해 시켜버렸다 친일 매국노를 처벌하고 역사바로세우기 하려는 시대적 과업이 친일 이승만에 의해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 지지를 받던 독립운동가 조봉암, 최능진 등도 종북 간첩으로 누명 씌워서 처형하는 등is.gd/Zl48Lm
안보를 독재 권력을 유지하는 방편으로 이용한 빨갱이 매카시즘 선례를 남겼다 군사정권 역시 통일과 안보를 정치에 이용하기만 했을 뿐 진정한 통일을 위한 노력은 별로 없었다. 남북통일을 외치는 학생과 정치인들을 종북으로 몰아부치기만 했다 군사정권의 종북 매카시즘은 새누리당으로 이어졌다 전쟁 불안이 일어나면 보수 표가 왕창 몰리는 점을 이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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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자 처단이 프랑스를 단결시켰다
(사진/드골의 나치 협력 반역자 처단을 기록한 <프랑스의 대숙청>)
“애국적 국민에게 상주고 민족을 배반한 범죄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국민을 단결시킬 수 있다.”
나치 독일로부터 프랑스가 해방됐을 때 드골 장군은 나치 협력자 숙청을 위한 원칙을 이렇게 제시했다.
그는 망명정부 시절부터 조국을 배반한 나치 협력 프랑스인을 준엄하게 심판할 것을 천명
하고 준비했다. 2차대전 후 새 사회 건설과정에서 나치 협력자에게 면죄부를 발부해
재등장시키는 과오를 범한다면 “국민을 단결시킬 수 없다”는 것이 드골의 판단이었다.
나치 정권에 협력했던 민족배반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나치 독재를 미화 하고 국민을 이념적으로 분열 시킬 거란 사실을 드골은 미리 내다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친 나치파가 사회악으로 자리 잡기 전에 그는 나치 협력자를 준엄하게 심판하여 프랑스 사회에서 완전히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드골은 △나치 독일의 점령을 정당화한 투항주의자 △히틀러의 괴뢰정권인 비시정권의 모든 공직자와 지원세력 △나치 독일과 추축국(일본과 이탈리아)의 승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협력한 프랑스인 등을 나치 협력자로 개념 규정했다.
그가 국내 레지스탕스(반나치 저항단체)를 총지휘하면서 프랑스가 해방되기 전에 나치 협력자에게 사형선고를 내려 집행하게 하고 독일군에 총격을 가하는 등 시민전쟁을 펼친 것은 조국해방투쟁이면서 미국의 군정 시도를 저지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드골은 미군이 진주하기 앞서 레지스탕스가 행정력을 먼저 장악해 군정을 저지할 수 있었다. 수도 파리가 레지스탕스의 봉기로 해방돼 드골이 연합군 진주에 앞서 입성한 것은 군정을 결정적으로 좌절시켰다.
드골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역자 숙청을 철저하게 집행했다.
드골은 비시정권의 고관대작을 심판하는 최고재판소를 파리에 설치하고, 일반 나치 협력자를 응징하기 위해 지방 숙청재판소를 각 현소재지마다 세웠으며, 경범죄에 해당하는 협력자들을 추궁하기 위해 시민법정을 창설했다.
그리고 나치 독일을 찬양하면서 영·미 연합군을 증오하고 드골의 임시정부 ‘자유 프랑스’를 테러집단으로 매도한 언론인과 지식인 반역자들을 가장 먼저 파리 숙청재판소의 도마 위에 올렸다.
친비시정권의 일간지 <오늘>의 정치부장 조르주 슈아레즈가 1차로 재판에 회부돼 사형선고를 받고 44년 11월9일 총살당했다. 다음으로 <자동차신문> 사장 르전과 <오늘>의 칼럼니스트 폴 샤크 등이 줄줄이 재판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드골의 대숙청은 이렇게 막이 올랐다.
언론인들이 첫 번째 심판대상이 돼 거의 모두 사형으로 다스려진 배경은 드골이 후에 회고록에서 밝혔듯 “도덕성의 상징이기 때문”이었다. 언론인에게 면죄부를 주면 곡필을 휘둘러 국가의 도덕성과 윤리를 마비시키는 암적 존재가 되기 때문이었다.
나치 협력자 숙청재판은 1차대전 승리의 영웅이며 드골의 군 선배인 비시정권의 수반 페탱 원수도 반역자로 규정해 사형을 선고했다. 드골은 그를 무기징역형으로 감형했으나, 라발 총리는 사형선고 후 즉각 처형되었다. 숙청재판은 프랑스 임시정부 대통령 드골의 훈령에 의해 집행됐고 형법 75조 국가반역죄와 87조 간첩죄가 적용됐다. 드골의 임시정부는 200만명을 나치 협력 혐의로 내사했으며, 이중 99만여명을 일단 체포해 조사했다. 재판 결과 6763명에게 사형선고(사형집행 767명), 2702명에게 종신 강제노동형, 1만637명에게 유기 강제노동형, 2만2883명에게 징역형, 2044명에게 금고형이 선고됐다. 시민법정은 9만5천명에게 부역죄형을 내리고, 7만명의 시민권을 박탈했으며 공무원 12만명에게 파면 등 행정처분을 가했다.
프랑스는 드골의 반역자 청산 성공에 힘입어 정치·경제·사회·문화·언론·지식인·대학 등 사회 각 영역에서 나치 협력자를 도려냄으로써 자유와 평등, 사회정의가 넘치는 새 나라를 건설했다. 이후 프랑스사회는 민주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고 ‘반인류범죄법’을 도입해 지속적으로 반역자를 응징하고 있다. 나치 협력 세력의 대화합 논리를 거부하고 대숙청에 성공한 배경은 그가 자유 프랑스의 임정세력(주로 우파)과 국내 레지스탕스(주로 사회·공산당의 좌파)의 인사들만으로 임시정부를 수립해 좌우연합전선 구축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프랑스의 해방정국 주체세력 형성은 드골식 청산을 시도한 반민특위를 좌절시키기 위해 친일파와 합작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선택과 정반대이다. 여기서 한국의 친일파 청산의 성패가 갈린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