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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혁당 사건의 끔찍한 실체 증언


전기고문…물고문…몽둥이 찜질…‘온몸에 피멍’

박정희 정권이 독재에 반대한 민주 학생들을 빨갱이로 몰아서 고문하고 살인한 세계적 사법살인 인혁당사건

연루자들과 교도관들이 전하는 고문의 실상은 처참하기 이를 데 없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중앙정보부 수사관들과 파견 경찰관들에 의해 구타, 몽둥이 찜질, 통닭구이, 물고문, 전기고문 등이 자행됐다”고 밝혔다.


1982년 형을 마치고 출소한 전재권·이태환·정만진·유진곤·조만호씨 등 5명은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다 80년대 중반에서 지난해까지 50대 중반~70세의 나이에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기도 했다. 서울구치소 교도관 이모씨는 “하재완씨는 물고문으로 아랫배가 불룩하고 온몸에 피멍이 들었으며, 우홍선씨와 함께 고문 후유증 때문에 조사받은 뒤 업혀서 구치소에 들어 왔다”고 증언했다.




파견 경찰 전모씨는 “피의자들을 팔걸이가 있는 의자에 양팔을 얹게 하고 군대 야전전화기 같은 것을 돌렸는데, 그것이 전기고문 장치였다”며 “돌릴 때마다 피의자들이 상당히 괴로워 했다”고 밝혔다. 물고문에 대해 경찰 이모씨는 “양손과 발을 묶은 뒤 거꾸로 매달고, 얼굴에 수건을 씌우고 주전자로 물을 붓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가 펴낸 ‘사법살인, 1975년 4월의 학살’이라는 책에는 교도관 전모씨의 증언과 사형수들의 법정 증언 등이 담겨 있다. 전씨는 “하재완씨는 고문으로 창자가 다 빠지고 부서져 버리고 엉망진창이었다”며 “이들은 고문 후유증으로 두 가지 이상의 질병을 갖고 있었고 제대로 걷거나 바른 자세로 앉아 있지도 못했다”고 밝혔다.






도예종씨는 상고 이유서에서 “고문으로 조사 때도 협심증까지 생겨 여러번 졸도했다”고 했고, 우홍선씨는 법정 진술에서 “고문받을 때는 조사를 받던 3층에서 떨어져 죽고 싶었으며, 전기고문을 두번만 더 돌리면 심장이 파열돼 죽을 것 같았다. 고문 수사관은 술에 취해 있었다”고 말했다. 전창일씨의 법정 진술에 의하면 수사관 5~6명이 며칠간 잠을 재우지 않고 번갈아 조사하며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갔고, 검찰에 와서 “중앙정보부에서의 조사는 모두 허위, 날조”라고 주장했다가 중정 지하보일러실로 끌려가 다시 전기고문을 받았다




전기고문 동영상





교도관 전씨는 1989년에 이같은 내용을 증언하며 “그들을 내가 기억해냈다고 해서 그 시대를 구차하게 살아남은 우리의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전씨의 ‘양심고백’이 있는 13년 만에야 의문사위에 의해 인혁당 재건위사건은 진실의 빛을 볼 수 있었다. 의문사위 관계자는 “고문은 1차적으로 인간의 육신을 파괴하지만 더욱 가혹한 것은 이들의 영혼까지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입력 : 2002.09.16 17:03


군사정권 31년이 끝나고 민주 정부가 들어서면서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 의해 독재정권의 종북 조작 사건들의 진상이 하나씩 밝혀지고 1심 2심 대법원 재판까지 거쳐 인혁당사건은 박정희 유신독재에 반대한 민주주의 학생시민을 종북빨갱이로 누명씌워서 고문 처형한 용공조작 사건이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독재 후예 박근혜는 희생자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부친의 종북 매카시즘을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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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러브요